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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금형 <심폐소생술연습>, '존재와 사물 간 분열'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3. 16. 17:01



    <심폐소생술연습>(스튜디오M30, 2013년 12월 28일~12월 30일)은 정금형이 수면에 빠졌거나 의식이 멈춘 상태의 환자―더미―를 간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전라가 된 채 그의 팔로 자신의 신체를 더듬게 한다. 의식이 죽은 상태에서, 감각 역시 작용할 리 없는데, 그에게 자신의 신체를 내어 줌으로써 환자의 팔로부터 어떤 생명의 기운이 마법처럼 돋아나는 듯한 느낌도 든다. 환자의 시선이 향하는 그 허공에서 관객과 마주한 정금형이 움직이지 않는 관객의 신체를 직접 애무하듯 “내가 싫어요?”란 말을 무심하게 꺼내 놓는 게 분기점이 되는데, 이는 죽은 이의 몸을 떠나 우리에게 즉각 전해진다. 


    어떤 기계음이 중독적 구문으로 의식을 맴돌고, 형광등이 아른거리는 가운데, 정금형은 죽은 자의 무의식과의 교호 작용을 유희적 몸짓으로 반복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전도시키는 희생 제의를 펼친다. 그 속에서 정적을 깨는 말은 죽은 신체가 살아나는 게 아니라 이미 죽었음을 확인시키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신체와 관객의 신체 바깥의 투명한 대기 속에서 정금형은 이 죽은 자의 몸을 통해 관객을 방관하며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 곧 관객은 죽어 있는 자로서 발견되며 마치 하나의 인형이 된다는 점에서 그 말은 특이하다. 


    서지 않는 성기 대신 확대된 성기로서의 팔을 들어 올리며 정금형 자신을 더듬게 하는 움직임, 곧 자신의 신체로부터 연장된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간호이면서 섹스의 기호를 띠는데, 이는 이 장면 이전에 이미 어떤 반복된 장면이라고 추정 가능하며, 그것이 이미 삶과 죽음으로 나뉜 상태에서 두 사람의 섹스가 지난 둘의 삶의 연장에서 똑같은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죽은 자를 산 자처럼 취급하니 이는 일종의 애도 불능의 상태인가. 


    ‘내가 싫어요’라는 말은 자위행위에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죽은 자의 의식을 판단하지 못하는 한 여자의 정신 나감을 가리키기 이전에 이미 둘은 사랑했거나 또는 어긋났거나 불가능한 사랑의 과정이 있음을 전제하고, 그래서 정금형의 한마디는 이 둘 사이의 드러나지 않은 내러티브를 작동시킨다. 이는 여자가 남자가 의식이 있던 순간부터 알아 왔고 내지는 남자의 의식이 읽히는 시점에서 남자와 교류를 해왔음을 최소한 일깨워 주는 한편 그가 실은 죽은 것이라기보다 잠들어 있는 것에 가까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초기에 사물들을 존재로 다뤄왔다면, 곧 죽어 있음을 생명으로 일깨우며 자신은 피동형의 죽어 있음으로 관계 맺는 전도된 양상을 가져왔다면, 그리고 어떤 몰입을 가져갈 수 있었다면, 잭슨홍 작가, 임근준 평론가의 협업 <기술적 문제>에서는 잭슨홍이 무대 내에 제시한 사물이 그녀에게는 그리고 관객에게는 존재로 매개되지 않는 일면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이후 여러 미디어를 활용해 사물로부터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작업들에서는 어떤 균열적 변화의 지점이 있었다고 보인다.


    이는 바깥에서 보면 사물인 신체를 그녀가 존재로 다루되, 그 사물이 정금형을 매개하기보다 생명 없음으로만 기능하는 부분인데, 그 연장선상에서 <심폐소생술연습>에서 사물로써 존재하던 정금형이 사물을 벗어나게 되는 ‘착탈의 뜀박질’의 거리두기는 관객의 비몰입 이전에 사물에 대한 존재 인식의 어떤 균열 양상을 징후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사물을 가져오지만 사물을 존재로 만드는 불가능한 애도 작업은 실패하고 만다.


    인공호흡을 실시하는 순간부터 멈춰 있던 장면은 끝이 나고, 심폐를 소생시키는 온갖 기계의 작동은 사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연금술적 생성의 판타지 대신, 어떤 교육적 시뮬레이션의 시연으로 재현된다. 일종의 거리두기가 일어나 친밀하게 관계 맺으며 공연의 전이 지형을 채우던 인형이 관객을 대리해 사망하는 순간, 위급한 풍광이 곧 연출되지만 이는 자못 우스꽝스럽다. 동시에 관객은 인형과 함께 사망한 채 정금형의 벌거벗음을 실재로 직면하며, 사물과 나뉜 인간, 곧 죽음을 목격한 존재, 그리고 그 죽음과 분리된 존재의 분리적 시선을 한편으로 체현하게 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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