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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16개의 발타리 필름 익스페리먼트(valtari film experiment)에 관한 메모
    카테고리 없음 2013. 8. 21. 13:04


    1. varúð by inga birgisdóttir


    어떤 자막도 없이 흘러간다. 그저 음악과 시적인 이미지들로 이뤄진 영상뿐이다. 


    화면 전체를 뒤덮으며 눈이 온다. 점차 밝아져 산과 강이 펼쳐지자, 마치 사운드는 이 세계 자체를 밝히며 오는 듯하다. 곧 음악은 축소되어 배경을 장식하는 대신, 그 배경 자체의 울림으로 온다. 이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내러티브를 보충하는 측면에서 음악이 사용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뮤직비디오, 그리고 음악 자체를 상징하는 영상을 다시 만드는 프로젝트에 의한 것일 것이다.


    이어 거대한 절벽들 사이에 한 사람이 손전등을 켰다 껐다 한다. 이 무수한 존재들의 점차적 증가, 그에 결부되는 음악의 상승은, 신비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들은 어디서 왔는가,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은 곧 자연 속 외롭게 서 있는 인간 자체의 본질을 궁구하게 만든다.


    2. valtari by christian larson


    춤이다. 인간의 몸, 고꾸라졌다 펴짐을 반복하는 땅에 가까이 위치한 남자의 몸,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왠지 모를 숭고함, 그리고 어떤 연약함과 순수함에서 그것들이 함께 기인하는데, 느리게 나아가는 보컬은 배면에 울리는 신비한 전자음의 진동 아래 마치 깊은 울림과 퍼져 나감으로 현상된다. 몸과 고개를 뒤로 젖혀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그와 똑같은 포즈를 취해 바라본 여자와 시선이다. 점점 둘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지며 만나고 난 후 나누는 사랑은 춤의 동작들로 승화된다.


    3. ég anda by ragnar kjartansson


    무미건조하게 각각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두 남자, choking hazard, 곧 ‘못말리는 좀비들’이 된다. 그렇게 음식을 먹다 한 남자가 목 막히는 사태를 맞고, 이는 마치 전염된 듯 사람을 바꿔 나타난다. 이 경건한 분위기의 음악 속에 소거된 음성의 영상은 우스꽝스럽게 비춰진다. '숨이 위대하다'는 패널을 들고 끝나는 것처럼, 마치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숨 막힐 듯 대단하고, 평소 느끼지 못하는 '숨 쉬는 것' 자체에 대해 느끼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4. ekki múkk by nick abrahams


    매우 커다랗게 확대된 달팽이, 늑대인가와 마주치지 않고 바람결에 실리듯 자연스레 목소리와 목소리가 오가며, 서로를 이해하는, 곧 생물의 목소리가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시선을 제공한다.


    5. varðeldur by clare langan


    불투명하게 비치는 입자들의 부상과 그것들이 잠시 모여 희미하게 형체를 비추는 광경은, 그 미세한 입자들이 존재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치 이 입자들은 시규어 로스의 음악의 단속적이고 더딘 음악의 리듬 자체의 속성을 가시화하는 것과 같았다. 


    6. leaning towards solace / floria sigismondi.


    마치 복장은 인어 같다고나 할까. 사막을 헤매는 남자와 도시의 이방인인 여성은 서로를 그리듯 끊임없이 걸으며 허덕인다. 이 둘의 화면의 병치는 외로움과 존재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며 마지막 쓰러진 남자 곁에 도착한 여자, 그리고 눈을 뜨며 만나는 장면으로 승화되는데, 결국 스스로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관계 맺는 너를 통해, 그리고 또한 나 자신 역시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있어 '너'가 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세상에 맞선 용기와 희망을 안기는 것 같다. 남자는 '사랑은 모든 것'이란 말을 건넨다. 그리고 모래 한 줌을 보내고, 어느새 천사 날개를 한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으로 변한다. 


    7. seraph by dash shaw & john cameron mitchell

    엄한 아버지의 훈계, 그리고 태곳적 어린 시절의 놀림 받음의 몇몇 사건을 겪을 때마다 주인공을 자신의 신체에 칼로 눈을 그리는 행위로 그것으로부터 눈을 뗀다. 깊게 새겨진, 트라우마와 눈은 지울 수도 감을 수도 없이 깊숙한 상처로 남고,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 가며, 감옥에 가게 된다. 갑작스레 감옥 동료의 칼에 맞아 맞은 죽음을 맞은 이후,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한테 들었던 눈들이 신체 전체로 새겨진 천사의 모습으로 변한다. 


    8. dauðalogn by ruslan fedotow


    자욱한 안개 속에서 깊이 잠든 남자를 안고 오는 남자, 이는 성모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이미지인 '피에타' 양식을 자연 연상케 한다. 한 명이 눈을 감고 있지 않을 때 둘은 말이 없이 그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발가벗은 두 남자의 모습이 자연과 동화되며, 떨어질 수 없는 애착과 보살핌의 관계는 그 둘 너머의 사회를 상정하지 않고, 성스럽게 승화된다.  


    9. rembihnútur by arni & kinski


    다양한 사람들의 현시되는 얼굴, 그 자체만의 존재 가치를 상정하며, 마지막에 흐르는 흑인 여자의 눈물로 끝이 난다. 어떤 인종이나 나이, 사는 지역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10. fjögur píanó by alma har'el/ denna thomsen


    신체에 새기는 표지들, 두 남녀의 섹스는 독특한 몸짓들의 춤으로 표현된다. 이방인으로부터 받은 에메랄드빛/주황빛 사탕을 빨더니 그들과 바다 속에 빠진 자동차를 타고, 광분하며 엑스타시를 느낀다.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현실 이탈의 상황이고, 이는 스크린 속 가상  현실로 드러난다. 사탕은 마약 같은 초현실로의 매개체인 셈. 상처를 새기며 사랑의 서약을 하며 오직 신체적인 감각으로 서로를 인지한다. 그리고 두 남녀의 침실에는 채집한 나비들이 있다. 이는 신체적 변용을 겪은 뒤에 필연적으로 오는 성장의 의미인가. 이 아픔의 신체 파지는 감내해야 할 사랑의 절차인가. 이들을 통해 신체는 물렁물렁한 살보다는 거죽이자 무늬를 새기는 하나의 표면이 된다. 마치 무늬들을 안은 나비의 신체가 하나의 화려한 그림으로 다가오듯 이들의 신체 역시도 그러하다. 찬란한 아름다움의 순간을 안고 박제된 나비들의 모습처럼 이들은 영원한 한 순간의 사랑과 죽음을 꿈꾸는 것일까. 그리고 그에 대한 애잔함, 어떤 분노도 함께 안으며.


    11. ég anda by ramin bahrani


    앵무새에서 도시를 수직 상승하며 바라본 부감 쇼트, 그리고 각종 이화된 시선들에는 거대한 도시의 사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각종 생물들의 시선을 교차 편집하여 마치 도시를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듯하며, 그리고 다시 그 거대한 도시에 격리된 동물을 바

    라 보게 한다. 타자화된 동물들, 죽어가는 금붕어는 마치 우리의 딱딱한 문명으로는 그것을 구제할 수 없으며, 또 그것에 한없는 연민을 갖는 우리의 시선을 제어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12. varðeldur by melika bass


    흐릿한 연갈색 골방에 동일한 색의 옷을 입은 여자는 마치 좀비처럼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혼란의 심리 상태를 보인다. 마치 음악과 별개로(음악이 단순 배경음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악에 항전하듯, 이 격렬함은 그녀 내부로부터 온다. 그리고 음악을 지시한다. 


    13. varúð by björn flóki


    낡은 구두를 살포시 벗는 흑인 소녀의 발, 그 옆의 구두는 마치 하이데거가 말한 고흐의 낡은 구두를 연상시킨다. 자연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마지막 그녀의 누워 있는 모습 뒤로 쏟아지는 폭포는 90도 시계 방향으로 회전되어 마치 소녀가 폭포와 전면에서 포옹하는 듯한, 스펙터클한 광경을 안긴다. 


    14. dauðalogn by henry jun wah lee


    자연 자체를 비교적 꾸밈없는 시선으로, 곧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환유한다. 이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 자체가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안고 있음을 상정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것을 역으로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15. fjögur píanó by anafelle liu, dio lau and ken ngan


    진흙 같은 끈적거리는 것이 붙은 신체의 네거티브 형상, 이 이 점액질의 피부가 신체를 감싸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 늘어나고, 또 변형되며 존재 자체의 비극으로 현상되며, 어떻게 보면 추하게 보이는,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을 역설적으로 사유하는, 무너져 내리는 얼굴을 가진 신체는, 이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 그러나 약간의 비장미를 안은 이 음악이 어떤 슬픔의 간극을 안고 그것을 피워내는지를 물리적인 표지로 보여준다. 클로즈업했을 때 드러나는 우둘투둘한 피부와 텅 빈 눈동자는 그 슬픔, 그리고 낯선 신체에 대한 감각을 한층 더 실재적으로 가중시킨다.


    16.varúð by ryan mcginley


    뉴욕 도시를 쾌활하게 걷는 한 소녀는 유독 도시의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 빛이 된다. 이 소녀의 이 도시에는 잉여에 가까운 밝음은 도시의 풍광이 한 순간 멈추고 그 안에서 계속 뛰어가는 소녀의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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