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7.10.31 00:42

임지애(Jeeae Lim), <너의 동방, 나의 유령(Your East, My Ghost)>

임지애 [사진 제공=국제무용협회]

무대 오른편에서 몸을 구부린 채 한참동안 임지애 안무가가 드러내지 않는 건 그의 얼굴이다. 정작 얼굴이 드러났을 때는 그것이 얼굴이라는 느낌이 없다. 이 느린 호흡의 움직임들은 표현 자체로 작동하나 한편으로 공간에의 사운드로의 반향과 아카이브, 이후 그 실시간적 변용을 위한 실험으로서 도구적인 몸짓을 구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천장 자체가 사운드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기 때문인데, 결국 안무는 사운드를 생성하기 위한 느린 궤적을 만들기라 할 수 있겠다(여기서 이미지 혹은 움직임은 사운드와의 물리적 관계가 필연적이고 형태적인 관계는 자의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점을 자각하지 않을 때 아니 움직임의 독립성을 끝까지 주장한다면,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니 무엇에 근접하는가. 일종의 이미지로서의 움직임들이다. 호흡과 멈춤으로 지정되는 움직임은 그것을 이미지로 순간 붙잡아 둔다.

다른 한편 이미지-움직임은 사운드와 독립적인 장을 만든다. 이는 순전히 움직임과 사운드가 (그 생성에 있어서 시차적 간극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두 개의 장이기 때문이다. 빗물소리처럼 들리는 처음 사운드는 감각의 지층을 구별 짓는데, 어떤 내부는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나는 안에 있다’) 반면, 동시에 어떤 바깥은 심리적으로 요동친다(‘그는 안에 있다’). 이러한 두 감각은 사운드가 일종의 내부 혹은 구역을 생성하는 가운데 그 바깥에서도 여전히 이미지는 유효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러한 사운드가 단순히 외부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여기서 이미지-움직임은 사운드와의 물리적 관계가 자의적이고 형태적인 관계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가 어찌 됐든 하나의 궤적 아래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소릿값이 더해지거나 빼는 것만이 실험이 된다. 곧 하나의 궤적을 깨는 것은 사운드가 완전히 동시에 갑자기 빠졌을 때로 볼 수 있다. 한편 일종의 파편으로서 이미지들을 펼치는 가운데 임지애는 한국 무용의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한다(사실 이런 부분은 전체의 일부분으로, <너의 동방, 나의 유령>이라는 제목을 따르자면, 주제로까지 관철됐는지는 의문이 있다). 두 팔을 좌우로 펼치고 호흡을 아래로 누르며 관절을 놀리는 행위들을 흐름이 아닌 분절된 단위(이미지)들로 바꾼다. 그리고 이는 어느 순간 거꾸로 꾸물거리며 역순의 움직임으로 감긴다.

어떻게 보면, 후반에 이르러 움직임을 멈추고 지르는 소리는, 몸의 확장이자 움직임의 이전(移轉)적 형식으로서 어떤 실험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전이 뮤트되어 있었음을, 곧 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음을, 나아가 그제야 들리는 것임을 상정하는 듯하다. 사실 어떤 소리들은 움직임을 반영하든(후반에는 소리로 연장되는 움직임을 선보인다) 그렇지 않든(사운드-움직임의 메커니즘은 언어로써 설명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의 바깥으로부터 그의 내부를 향하거나 그의 내부가 외부로 비치는 광경이었는데, 그러한 소리가 앞선 광경을 찢는다기보다 벗겨 내는 작용을 한다, 우리가 마치 그 전에 헤드폰을 쓰고 있었듯이. 그러니까 소리에 잠겨 있다가 실재의 소리를 마주하는 순간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이미지-움직임은 사운드의 잠재적 장소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미지-움직임은 사운드로 폭발한다. (여기서 이미지-움직임은 사운드와 합치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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