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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인페스트 '퍼포먼스의 유동적이고 느슨한 짜임의 플랫폼'
    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2. 4. 18:45


    하루 동안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나인페스트'는 '1'이란 시리즈 첫 번째로서 이후 잠재된 기획의 기표와 함께, '서바이벌'이라는 부제가 더해져 있었다. 9팀이 협업을 통하거나 전체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는 상황이 '서바이벌'에서의, 경쟁보다는 생존의 의미를 존속시켰는데, 여기서 '서바이벌'은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객 전체로의 확장적 경험의 의미로 재전유된다고 볼 수 있었다. 


    ▲ 나인페스트 공연 ⓒ박수환[사진 제공=아이디언](이하 상동)

     

    가령 이로경 작가의 <물구경>은 입구 반대편에 설치되어, 물 웅덩이에 발을 담군 성수연 배우가 간헐적으로 즉흥적 대사를 쏟아내거나 했고, 이로경 작가는 초반 이후 투입되어 이를 영상으로 매개하는 과정이 3시간 내내 진행됐다. 그리고 물과 연결된 음향을 공간 전체로 분사하는 박승순의 <Vapor>는 보이지 않게 전체의 시공간을 지배했다. 마지막 작업으로 중앙에 자리한 바이올리니스트 최세희, 드러머 조인철 듀엣의 <순간>에는 박박(parkpark)의 유닛으로 참여한 박민희가 구음으로, 장홍석이 움직임으로 참가했는데, 이러한 순간적인 결합이 매우 흥미로웠다.
     
    무언가 뜨뜻미지근한 듯 펼쳐지는 퍼포먼스들은 비가시적 시공간의 짜임에 대한 비인지적 체험과 다시 펼쳐짐의 사태 자체가 매끈한 연결을 이어 가는 바람에 어떤 구분 지점을 명확하게 찾기 어려움에 따른 지루함의 결과를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리에서 앉아서 관람하는 게 불가능한 퍼포먼스들의 속성상 3시간을 겪는 것 자체를 관객의 생존('서바이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나인페스트'는 최소한의 합과 합의로 도출되는 즉흥적 생산의 결과 자체가 일시적인/사라지는 퍼포먼스 페스티벌의 '생존' 방식과도 연결되며, 여기서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 서사와 개념에 대한 창안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의 결과가 전체적인 관객의 지루함의 분위기('생존의 기로'에 놓이는)로 다시금 확대, 재생산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사운드에서가 아닌 사운드와 움직임이 오고 가는, 이런 실험적 양식의 합이 짜이는 현장은, 오랜만에 목격한 사태로, 다양한 작업에서 여러 재미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그리고 끝까지 자리하고 있는 이로경의 작업에서 성수연 배우의 대사에서 사운드의 장소적 동기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위치 전환되는, 강진안과 최민선의 <2>는, 곧 첫 번째 퍼포먼스는 브루스 나우만 이후의 신체 측정술의 계보의 연장 격인 동시에 그것을 변형, 각색, 이탈하(려)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는데, 두 사람은 줄자를 서로 간에 연결해 움직였다.[각주:1] 이는 무용 신(scene) 자체에서는 두 사람의 평등한 합의에서 도출되는 즉흥 움직임 생산 방식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가깝게 위치함으로 인한 매우 느린 움직임이 커다란 형태로 보이게 되는 것에서-거기에는 음악의 전개 역시 큰 힘을 발휘했고- 흩어짐으로써 빠른 움직임들로 치환되는 상대적인 속도-크기의 변증법적인 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라고 한다면, 사실상 계속된 오브제를 더하고 움직임을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잉여적인 지점으로 보였다. [각주:2]

     

     

    박민희는 프로젝트 팀을 이룬 윤재원, 최미연과 함께 이로경의 반대편에 음식 부스를 마련해 역시 전체의 시공간에 자리하는 가운데, 뭔가 거세된 주인 없는 장 안에서-어떤 사회(자) 자체도 없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부분이다- 유일하게 웃는 낯의 '안주인'과 같은 느낌으로 음식을 나르며 시공간에 간헐적으로 개입했다.[각주:3] 이로경 작가가 바깥을 안으로 옮기(고 다시 드러내)는 카메라를 통해 겹쳐진 시각의 분포로 현장을 이미지로 건조하게 매개(하며 그 스스로는 사라짐을 선택)하고 있었다면, 갖가지 '음식'들은 좀비화되는 관객의 신체 내장에 작은 동요/요동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역시 드러나지 않는 감각으로 소급되고 있었다. 
     

     

    장홍석과 주희는 <난 여기 뒤에 숨어있었다.>에서 무지갯빛 배경에 목 잘린 (누드) 다비드 상을 바닥에 놓는 것부터 시작해 그것을 앞으로 옮기고 다시 제자리로, 그리고 이 공간 자체를 감싸고 그 이미지에 감싸인 채 돌다가 사라지는, 공간 전체를 환유/지시하는[각주:4]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움직임을 펼치기보다 그 이미지에 종속되는 식으로 움직임을 전개했다. 이미지를 보고 팔다리를 흔드는 식의 시작은, 시선/시각이 없는 다비드 이미지와 상동성을 가졌고, 유사 계열의 점퍼를 입은 까닭에 실제 천 조각에 인쇄된 이미지와 같이 부유하는 기표로서 이미지와 함께 이미지를 신체 내로 소환했다. 곧 신체 자체가 이미지가 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같았다.[각주:5]
     

     

     

    따라서 이는 본의 아니게 웹사이트의 그래픽 이미지를 입구 셔터 문에 갑작스레 투사된 <Jukebox baby>의 그래픽 이미지들의 부유하는 양상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이미지와 함께 작동하는 신체의 이상한 전개 양상을 이들은 프로그램에서 '충동'이라고 묘사했는데, 시작 지점에서의 이미지로부터 퍼져 나가는 움직임의 실재와 마주하는 순간은 사실상 착시의 어떤 지점과도 상응했고, 그래서 해소되지 않는 측면의 작업으로 볼 수 있었다. 장홍석이 주희를 목마 태우고 이미지에 휩싸여 공장을 돌 때 곧 이미지의 변형과 유동이 발생했고, 그러한 이미지-움직임의 변환 작업이자 그 둘에 변별점을 두지 않는 작업,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차이에 기생하는 작업으로 이 작업을 볼 수 있었다. 
     

     

    이 페스티벌을 공동 기획한, 그러나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정진화의 <Gas! Gas! Gas!>는 <Vapor>와 함께 화생방 (훈련) 상황에서 내는 소리 신호를 가리키는 이름이나 비가시적 사운드의 전개의 전체적인 양상에서 다른 퍼포먼스의 펼침으로 잇는 한시적인 시공간을 점유하는 짧은 매개 지점으로 '주의'를 은근하게 요청하며 영속했다. 곧 전면적인 장으로 나오지 않고 퍼포먼스 전반을 구성하는 매개자적 시점이 드러나 있었다. 
     

     

    <순간>은 그와 반대로 전면에 나왔는데, 최세희, 조인철의 둘만의 협업은 스코어를 따르지 않고, 서로의 연주에 반응하며 주체를 이전하고 다시 연장하는 식으로, 그럼으로써 다시 전개를 새로이 짜는 식으로 긴밀하면서 느슨한 연대로 긴장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각주:6]
     

     

    그러한 '연대의 긴장'이 앞서 언급한 마지막의 협업에서는 박민희가 그 둘의 사이에 불순하게 끼어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바이올린을 켜는 최세희를 박민희가 쫓으며 둘이 바깥으로 크게 빙빙 도는 가운데 바이올린의 리듬 자체를 흐트러트리며 연주 자체의 급박함으로 확장하는 공간의 전이가 일어났다면, 조인철은 드럼 위에 마이크를 덧대거나 느리게 음을 따라가며 그것을 붙잡거나 더디게 담아내는 식으로 사운드 실험을 안정되게 수행해 나갔다. 그 사이에서 장홍석이 천천히 돌며 움직임을 만들어냈는데, 음악에 완전히 붙잡힌 모습도 흥미로웠으나 거기에 자연스레 반응하며 움직임을 찾기 위해 느슨하게 움직이며, 곧 돌며, 거기에 움직임을 심는, 일종의 사유와 감각이 머뭇대며 얽히는 흥미로운 지점을 발생시켰다. 
     

    아쉽게도 가장 흥미롭던 마지막 퍼포먼스가 끝날 때 이미 많은 사람이 '생존'의 판에서 이탈해 있었다. 여러 복잡한 짜임의 판이, '놂'의 상호 역동적 생산의 장이 다시 열릴 수 있을까.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1. 사실상 강진안은 노경애 안무가의 작품에서 도구 사용을 통해 움직임을 만든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본문으로]
    2. 여기에 투여된 오브제 이미지들이 류혜욱 작가의 <기동상황-1>이란 작업인데, 마치 스태프와 같은 낯선 개입으로 비춰졌다. [본문으로]
    3. 나인페스트가 새로운 콘텐츠의 완성보다 즉각적인 퍼포먼스에서 우연적 발생으로 예기치 않은 결과를 얻는 게 최선이었다면, 그리고 페스티벌 자체가 판의 유동 자체를 보여주고자 함에 비춰 본다면, 여러 모로 판의 짜임 자체에 개입하는 식의 이러한 움직임은 적합한 것을 넘어 최선의 합리적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4. 중반 이후에 전개된 이 퍼포먼스는 마치 켜켜이 먼지가 쌓인 퍼포먼스의 판을 새로 갈아엎는 식의 전체 퍼포먼스 장의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청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본문으로]
    5. 이미지 자체의 원형 격인 이마고가 데드마스크, 곧 신체의 환유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곧 살아 있음을 죽음의 유동으로부터 거세/처리하고 있는 아이러니, 나아가 유머에서 꿈틀거리는 게 바로 충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움직임 자체가 꿈틀거림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본문으로]
    6. 바이올린은 켜는 정도에 따라 뒤쪽(이로경 작업 쪽) 스피커를 울리거나 악기 근처에 머물거나 하며, 드럼과의 거리를 넓히거나 좁히거나 또는 사운드를 확대하거나 줄이거나 하며 작용했다. 이런 반응들은 오직 현재의 감각에 대한 수여이자 그 상찬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연주에 대한 감각만이 존재한다. 그 흐름을 포착하지 않는 자에게는 지루함이라는 형벌이 주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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