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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무사회] <줄자 - / 정류장> 배치적 안무의 동적 역학
    REVIEW/Dance 2015. 9. 13. 03:34

     

    무대에 놓인 정렬된, 무용수 둘이 갖고 잇는 사적 소유물들의 일종의 아카이브는, 그의 삶을 구성(한다고 판단되게)하며 (삶을 축소 재현하고 은폐한다) 그 하나의 배치된 사물들이 놓인, 정박된 장소성으로부터 그들은 그 물체의 쓰임과 결부돼 일상의 행위를 재현한다. 가령 양치를 한다거나 하는. 노경애의 작업은 사물과 결부된 신체의 배치를 통해 사물이 주는 어포던스 감각을 시현하는 한편, 신체를 사물화하는 극도로 일시적인 순간의 실험을 감행하기도 하는 편인데, 맨 처음 놓인 장면은 그 전자에 해당하고, 이후 이뤄지는 장면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두 남녀의 분별된 성의 차이는 가령 여성 무용수가 줄을 감는 행위를 마저 다 하지 않아, 단지 그 사물을 어떤 관객이 인지 가능한 프로그램화된 행위의 일부로서 하는 차원의 행위를 미적지근하게 끝내고 돌아가는 점에서 무대를 선점하는 것의 비우월함의 측면을 시행하는 것 같은 흥미로운 씁쓸함을 안겼다. (그것이 물론 의도되지 않은 부분일 확률이 높겠지만, 안무가로서 이러한 배분의 문제는 명확했거나 명확하게 지적했어야 한다고 본다.)

     

    아무 말 없이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 이 퍼포먼스들이 엄격한 순간적 배치의 차례들을 비설명, 비언어의 구문 속에서 명시적으로 보여준다는 것과 함께 두 인격을 지우고 사물로서의 신체로 치환한다는 하나의 전제가 깔렸음을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더 거대한 차원에서 무용의 연장선상에서의 모든 퍼포먼스를 다룸에 있어 언급될 수 있는 부분이고 여기서는 약간의 혐의 차원의 제시에 그칠 수 있음을 일러둔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열거식의 제시는 이것이 아카이브로서의 어떤 퍼포먼스, 곧 명시적 목록들을 풀어놓는 식의 퍼포먼스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명확한 바다. 두 무용수는 바닥에 테이핑을 하고 하나의 진행 방향과 꺾이는 지점에서의 역 방향을 상정하고 처음의 작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반작용의 움직임을 가져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순간적인 뒤틀림과 그것의 (무용수로서도 어느 정도) 예기치 않은 곧 힘의 반작용의 부분이다.

     

    그것이 원래의 순간보다 더 길며 그럼으로써 춤은 의도되지 않은, 불완전한, 진행과 떨어져 나감으로 인해 뒹굴거나 흐트러지며 결국 무너진다. 이것은 곧 우리가 알고 생산하던 춤의 어긋남이며 그래서 사건이 된다. 더 이상 춤은 재현이 아니라 우연적인 발생이자 예기치 않은 실험의 연속이 된다. 그 위치를 달리 둠으로써 시선은 하나의 동작을 반복해 보는 대신, 시선의 판이 계속 깨지고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재현에 저항하는 춤, 몸의 다각도적 배치는 앞서 인격을 지움, 곧 신체의 사물화라는 과정에서 더 이상 어떤 감정이나 동작을 재현할 필요가 없어짐을 통해 이르는 부분으로, 사실상 말 없음은 오히려 그러한 측면에서 당연한 부분이라 하겠다. 경로로서의 움직임(과 미끄러짐)은 이어 서로가 제시한 바닥 테이핑에 대한 3차원적 구현, 가령 느린 회전과 그로부터 반작용적인 이탈이라는 기괴한 움직임 반경을 만들게 되며, 마지막으로 사물을 탈일상적 쓰임으로 신체의 한 확장 또는 변곡점이 맺히는 지점으로 주의를 갖게 만든다. 가령 호스를 던져 전시장 조명에 닿게 만드는 순간에 맺히는 이미지 따위가 안무의 결정적 지점이 된다.

     

    이를 프로젝트의 일환인 ‘안무사회’와 관계 맺어 본다면, 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보편적 특정적 인간 개체를 상정하고 그와 관계 맺는 디자인 사물과의 배치, 도 경로라는 도시나 거주 공간과의 신체적 배치의 구도 등이 ‘사회’라는 의미를 가져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노경애 안무가의 우연적/발생적 움직임을 만드는 배치적 안무술의 연장이라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말하자면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그것을 재배치하는 안무로서의 기능을 시현하는 것쯤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탈일상적이며 탈(재현)무용적인 움직임은 꽤나 신선하다 하겠다.

     

    김민관 편집장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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