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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젝트 뽑끼 <사소한>, 사적인, 그래서 소중한 것들
    REVIEW/Dance 2014. 12. 9. 10:20




    ▲ 프로젝트 뽑끼 <사소한> 중 '사소한 공간' [사진 제공=컬처버스]


    용혜련의 몸은 장소에서의 기억을 체현한다. 이는 장소는 기억을 담지하고 있고, 몸은 장소를 구획하는 일정한 움직임을 만듦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한 존재의 삶의 영역, 


    삶의 물리적·신체적 장이 활성화되는 영역에서의 반복이기도 하다. 세 명이 되기 이전에, 관객의 시점을 반영하면서 무대에 선행하는 인물로서 일종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밖의 영역이 교차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동선이 방해받아 그의 움직임 영역이 구겨지고 멈칫하게 될 이다. 김명진, 전지예, 용혜련, 이 셋이 복잡계의 일단을 보여줌으로써 ‘지저분한’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지만, 실은 더 이상 삶의 영역의 (불완전한) 상정도 아니고, 즉 개인에서 관계의 형태로의 전환의 성격도 아니며, 또 일정한 안무를 직조하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자율적인 움직임이 벌어지는 장, 그것 자체를 보여주는 데 가깝다. 


    마치 좀비 같은 김명진의 움직임은 앞선 습관적·인지적 활동 영역으로의 몸의 연장은 없고, 유동적이며 어떤 사고 체계도 없이 돌아다닌다. 이는 몇몇 형태를 변형시킨다기보다 팔다리를 털며 그 떨어져 나간 신체가 자율적 질서로,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그런 이상한 움직임이다. 마치 비체가 된, 감전된 몸이 전기 충격적 신호가 전달되는 것 같은 움직임들이 튀어나온다. 이는 과정적 작업을 극장의 러닝타임 아래 포박하고 그럼으로써 무대가 생성되는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의 새로움 자체에 어떤 재미를 부여한다. 



    ▲ 프로젝트 뽑끼 <사소한> 중 '사소한 말' [사진 제공=컬처버스]


    나를 보는 다양한 시선의 언어들이 가감 없이 또는 어느 정도 반감되어 드러나는 말들은 곧 상처를 줄 수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타인의 말은 스크린상 타이포그래피의 움직임으로 변형된다. 이는 위아래로 흘러가며 일종의 시각적 안무를 구성한다. 이는 보편적 개인의 영역에서 동시대적 지대의 삽입으로, 일종의 불쾌한 단어·인식의 변곡선을 그리기도 한다. 이는 ‘세월호’라는 이름이고, 일종의 현재진행형의 들리지 않는 주제가 말·의식으로 들어와, 말들의 리서치를 이번 무대로 체현하며 안무로, 말로 구성함을 추구하기에, 그것이 안무의 전체 지형을 바로 크게 바꿨음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의 움직임을 통해, 그녀를 그 텅 빈 공간을 대면하기보다, 그 텅 빈 공간으로서 관객을 대면(하고자) 한다. (이 점이 특이점인데) 윤리적인 시선, 어둠으로서의 신체로 선 그것이 말을 하고 있고, 또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밖에 없음을 요구한다. 이는 요청보다는 그저 강세고, 어둠의 타자, 어둠 자체인 타자를 일종의 산 주검을, 비생명을 체현하기에 이는 피할 수 있다기보다, 또 들리는 말을 한다기보다 그저 하나의 어둠 같은 시선, 부재하는 말이다.


    이윤정은 마지막으로 그 어둠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커튼콜을 했다. 그 전 환영이 어리벙벙하게 잔상으로 의식을 사로잡았다. 마치 자신을 그 어둠에 내어준 이 윤리적 요청(에)의 실험은 그녀 스스로를 향한 걸까. 그 바람 속에서 기꺼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켜보는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하지 못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니까 그녀를 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저 그녀 스스로가 어떻게 하면 더 보이지, 드러나지 않게 그렇게 춤을 췄다. 이 점이 아마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윤리적 측면일 것이다.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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