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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비 ․ 여름 ․ 민요>, 그 거침없는 컨템퍼러리의 민요-향연
    REVIEW/Music 2014. 7. 23. 18:23

    무대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고, ‘컨템퍼러리’했다. 민요에 비한다면 판소리는 조금 더 문학적이며, 가곡은 대단히 엄숙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기타와 각종 악기로서의 변용 능력을 갖는 신시사이저라고 할 수 있는 건반, 드럼의 더해짐은 퓨전이라기보다 전통 우리 악기를 새로운 판으로 접속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보인다. 특히 피리와 건반의 오고 감에서 두 개가 단속적으로 맞물려 어느 하나의 악기로 수렴되지 않는, 건반이 피리의 마개가 되는, 또는 피리의 증폭이 되는 어떤 연주의 한 부분은 측정하기 힘든 새로운 악기의 형태로 귀를 의심케 했다.

    보컬 아니 소리 역시도 보통의 민요에서의 구성지며 조금 더딤의 속도로 체감되지 않았다. 어쩌면 민요란 그 익숙함의 형식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다가오기에 ‘컨템퍼러리’가 아닌 무엇으로 제쳐 두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 ‘너무나도’의 익숙함이 익숙하지 않음으로 오인하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이나마 덜 익숙한, 또는 조금 익숙한 정도로의 각색을 통한(흔히 퓨전이라 불리는) 변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무대 같은 경우는 그 이상적인 예가 아니었을까. 민요에는 대개가 그늘이 없다. 이들의 무대 역시 그러했다.

    수님, 수녀, 해녀, 야구선수, 의사, 환자, 웨이터, 군인, 요리사 등 연주자와 소리꾼 내지는 퍼포머 모두가 하나의 각기 다른 캐릭터로 분해 처음부터 등장해, 천연덕스럽게 그 캐릭터를 수용했는데, 이는 ‘각기 다른 천태만상의 인물 군상이 어떤 연고도 없이, 하나의 시간과 장소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각기 재주를 뽐내며, 그 각기 다른 개성은 일단 하나의, 그리고 여러 각기 다른 무대를 만드는 데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어떤 일시적인 계약, 그리고 본분의 망각’ 정도의 흐릿한 내러티브를 제한다면, 어떤 내러티브도 찾기는 힘들었다. 그냥 하나의 코스프레 정도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각기 다름의 표현형들은 각각의 자리에서의 섞이지 않는 이색적인 조합(의 난망) 정도로 합산되지 않는 널브러짐, 스펙터클로 자리했다. 창극, 경기소리,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9명의 뮤지션들이 모였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오브제 타입으로까지 여겨지는, 하지만 실은 끊임없이 이 ‘파격적 실재의 소리’들을 생산하고 있는 이들은, 마치 아방가르드한 무대 연출가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홍성민 연출의 무대를 생각나게 했는데, 그 표현형들이 어떤 의미도, 또 음악과의 관련도 없는 가운데, 평등함의 형식으로, 나아가 음악 안에서의 ‘화합의 제약’으로 묶이며 과도하게 각각의, 그 이상의 존재감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성민 연출의 초기작(?)도 비슷하게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어떤 내러티브를 체현하지 않은 채 그저 무대에 이상한 표현형으로 위치했다(아마 이것이 그의 작품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하나의 주요한/중요한 요소가 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거의 의도치 않은 부분이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앞서 언급한 그늘 없음은 이 민요의 마디마디가 너무나도 현실에 밀접하게 닿아 있을뿐더러, 거의 해체 불가능한 정도로 자락이 되며, 힘 있게 뻗쳐 나오는 데서 연유한다고 하겠다. 이는 마치 햇볕을 고스란히 쐬며 거기서 옴짝달싹 묶여 한 치도 벗어나기 힘든 느낌을 안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한정 없는 밝음의 나날, 일상을 다시 선취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있기는 했던가. 민요는 그 흔적인가. 아니 그 반대의 현실을 덮는 의지의, 정신의 어떤 한 흔적인가. 어쨌든 이들의 소리는 어떤 음미, 사유의 집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하고 세게 몰아붙였다. ‘육칠월( 흐린 날)’의 가사를 듣고 있자니 감동이 일 정도였는데, 이는 가사 내용 자체가 아니라, 우리말이 이다지도 리듬과 부피, 억양, 두께 들을 지니고 구현되는 것을 본 적이, 들은 적이 없는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스님과 수녀로 각각 분한 이희문과 정은혜는 중간마다 사회를 보며, ‘제비 ․ 여름 ․ 민요’라는 제목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등장해 웃음을 줬는데, 정은혜는 입을 다시며 토크의 빈틈을 빠르게 파고드는 재치를 빛냈다. 이때야말로 스님과 수녀의 어떤 코스프레가 이야기성을 갖고 제2의 무대로 화했다. 정은혜의 랩에 가까운 소리는 정말 엄청난 폐활량을 자랑했고, 또 수녀복을 벗어던지고 나서는 화려한 무대 의상으로 구두까지 벗고 관객석을 마구 휘저었으며, 관객석 끝에서 노래를 마지막까지 부르며 내려오지 않기도 했다. ‘맹꽁이타령’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카운트다운이자 퍼포머(경기여성보컬그룹 앵비)-숫자 세기는 과장된 어투로, 민요의 범위를 벗어난 또 하나의 코스프레 내지는 캐릭터의 성격을 구체화시키는 부분이자 일종의 연극성이 민요와 접합되는 부분이었다. 그 숫자를 세는 퍼포머는 경찰 복장을 했는데, 섹시함을 과시하는 과도한 엉덩이 흔들기를 통해 일종의 ‘제복 코스프레를 한 유혹하는 여성’으로서의 캐릭터성으로 잡았다.

    한편으로, 음악에 맞춰 방사되는 움직임들, 오락가락, 굼실굼실, 터덜터덜, 2박자로 크고도 단순하며 빠르고도 지루하지 않은 몸의 리듬은 소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소리에 잘 들어맞았는데, 사실 그냥 단순한 몸짓들로 무대의 비주얼적인 각색이라 설명하기에는 조금 독특한 바는 노래가 뻗쳐 나가는 방사형(放射形)의 흐름이 무대의 에너지를 전하는 한편, 무대의 지형 그 자체의 지표가 됐다면, 결코 멈추지 않는 소리와 같이, 멈추지 않는 몸의 유동함이 어떤 민요의 특성으로서, 같이 뛰어놀고, 그러면서고 가능하며, 또 그러해야지 가능한 어떤 부분으로서 소리와 맞물려 널뛰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극히 동적인 보컬(소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무대 뒤에 스크린의 각종 타이포그래피의 일면까지도 매우 깔끔하게 도드라졌다. 생기 띤 글자들은 단순한 체였지만, 그 색이나 배열, 등장과 겹침이 세련됐다. 뭐 하나 빠뜨릴 만한 구석이 없는 공연이었다. 각각의 곡들을 다루지 못하는 점은 아쉽고도 그 이유는 한편으로 민요에 대한 이해 부족에 있다. 그렇지만 민요를 거의 극단의 형식, 형태로까지 밀어붙여 우리 것을 아방가르드, 컨템퍼러리의 최전선으로까지 이르게 한 데 대한 어떤 감탄이 이 정도의 글을 일단으로 마무리 짓게 한 데 가깝다.

    [공연 정보]

    일  정: 7.16.(수)~7.17.(목) / 8pm
    장  소: KB국민은행 청소년하늘극장
    출  연: 장영규(베이스), 이태원(일렉기타), 음악동인 고물(대금 고진호, 해금·철현금 김솔미, 피리 배승빈, 장구 홍상진, 가야금 홍예진), 이희문(소리), 국립창극단 정은혜(소리), 앵비(소리 김미림·이미리·성슬기·채수현·최주연), 프로젝트 ‘놈’(소리 김주현·양진수· 이동근·신승태), 이철희(드럼)
    스태프: 연출·음악감독·편곡 장영규 이태원, 음향 오영훈, 조명 이동진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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