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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물탱크 정류장>: '묘한 의식의 변용'
    REVIEW/Theater 2013. 8. 15. 20:28


    ▲ 연극 <물탱크 정류장> 리허설 [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 (이하 상동)


    의식은 방기된다. 침대 위 자유로움, 관객 자유로움은 구분되고, 서로가 서로를 닮아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 이 바텐더는 미세한 입자들로 날아간다. 분해된 섞임과 섞임의 이동, 그리고 부분으로서 치환되며, 어떤 내세울 수 없는 순차적 흐름의 일환으로 존재, 그리고 삶은 치환된다. 


    시작,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도 읽을 수 있는 내레이션은 마치 주체(화자)인 듯 말하지만, 극 세계를 벗어나며 일종의 매개자임을, 이 내레이션의 파악 불가능한 의미들의 흐름인 듯 그 목소리 역시 하나의 떠돎으로, 그리고 이 엇갈린 층위들의 불가능한 소통의 관계를 매개하지 않으면서 나아간다. 


    이 술집은 그리고 ‘물탱크 남’은 직접적으로 우연히 대응되거나 가령 그들의 말 저편에서 그 말에 대답하거나 또 그것을 직접 지켜보고 있는데, 창문으로 보는 것과 같이 현실은 이면에 어떤 비가시적 질서와 관계를 가리킨다. 


    이 대응의 문제는 가령 관객석에서 이 모든 층위가 다 바라 봐 보인다는 점에서(그것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데, 가령 물이 필요할 때 극에서는 일종의 ‘횡단의 비약’이 일어나는데, 바텐더는 일종의 극으로의, 그리고 관객으로의 경계를 오가는 매개자임에서 이는 기인한다. 



    그는 일상의 작은 것들의 절차적 지식에서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못하는 소심한 유형의 존재인데, 그의 일상은 매우 지루하고, 또 진지하다. 반면 인터뷰에 태연하게 임기응변으로 회장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이는, 외부로부터 급작스레 나타나 의미를 교환하고, 아주 새로운 현재로 이 물꼬를 트는 ‘과한 역량’을 선보인다. 


    ‘물탱크 공화국’을 꿈꾸는 막걸리를 가지고 다니는 이상한 교수 역시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기자로서 화자의 삶을 이탈한다. 


    이 현실의 생소화 효과 곧 진지함에서 엉뚱함으로의 점프는 이 작품이 지닌 극의 운동 방식이다. 물탱크야말로 플라스틱 문명의 순전한 이기이자 일단 도시의 복잡한 풍경을 지우고 어떤 ‘안락함’과 ‘매끄러움’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물탱크의 사회에 대한 시각을 ‘닫음’이 장기적인 어떤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물탱크 남자는 그의 방으로 들어오고, 그는 물탱크 밖에서 그 물탱크 안에 있는 그에게 말을 건다. 이는 마치 두 사람의 내면이 전도되는 환유적 심상을 남긴다.


    물탱크는 물이 고여 있고, 에너지가 보존되고, 또 재생시키는 곳이자,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말려들어가는 구심력의 표시는 조명이 하며, 그로부터 의식의 트랜스를 겪게 된다. 그리고 물탱크 남과 얼굴을 만지며 삶은 뒤바뀐다. 이는 ‘왕자와 거지’의 변형된 대입일까. 그는 물탱크라는 다른 세계로 건너가며, 그의 기억은 지워지고, 그가 돌아왔을 때 기억이 지워진 만큼, 현실 역시 그의 ‘나머지 기억’과는 차이를 보인다.



    ‘물탱크 남’은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이전하고, 마찬가지로 몫 없는 자로서 표상 불가능한 영역에 그가 존재했었던 것처럼, 현실에 기입되지 않는 기억도 '그'도 지워져 버린다. 곧 그는 세상을 기억하되 그것은 일치하지 않고, 다른 원래의 다른 이름으로 표상된다. 


    이는 앞서 왕자와 거지처럼, 그의 일상의 옷을 대신 입고 실제적인 그가 되는 변신이 가능하지 않다. 그는 이제 물탱크에서 또 다른 다른 이의 삶을 가로채는 그가 당한 것과 같이 똑같은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그'가 될, 다른 그의 삶을 듣고 미리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의 절차를 해보며. 그리고 거기에 모순이 있다. 


    곧 '그'의 자리로 자연스레 들어가며 이미 물탱크의 내부는 이 속 내부와 교환 가능하고, 곧 그 주민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오인하거나 아니면 온전히 그의 기억과 삶의 전면이 그도 기억하지 못하게 변용되어 있는 상태와는 다르다. 


    그는 '그'로 인식되기 위해 그들 입장에서는 그 억지를 억지가 아닌 지점으로 수용케 해야 하며 또 그로서는 억울하게 자신을 항변해야 하는 가운데, 곧 현실은 하나로 바뀌어 있지 않고, 그는 무기한 ‘그’의 삶에 적응해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의 삶이 이전된, 그러나 그의 삶인 '그'가 당연한 듯 갖고 있었던 삶, 그가 잃어버린 삶, 찾아야 할 삶, 그리고 모든 것이 모호한 가운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 삶을 요구하는 누군가는 그의 삶의 원래 주인이었다는 기억을 점점 잃음으로 인해 고통은 계속되는데, 그가 다시 자신의 삶을 차지하고, 그 어떤 추억의 지점에 닿는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물탱크를 통과한 뒤 변용된 시작 지점, 아련한 기억의 자취로만 남아 있는 현재와 연결·접속되지 않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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