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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스틱'한, 그 금기 너머의 영화들
    카테고리 없음 2013. 7. 29. 20:32

    11일간의 판타스틱한 여정을 마무리하다





    ▲ 제17회 부천판타스틱영화축제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스틱’이라는 말 자체에는 금기 너머의 느낌이 담긴다. 일상은 평평하고 단조롭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래서 일상을 넘는 것 자체를 일탈과 도발이라 일컫는다면, 판타스틱은 그 일상 너머의 것인 동시에, ‘금기 이전’의 내지는 ‘금기 너머’의 무엇과도 같다.


    축제(festival) 역시 일상의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판타스틱과 축제의 만남은 꽤 환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피판)로, 그 상영작 하이라이트를 보면 피 튀기는 엽기적인 장면들, 좀비를 비롯해 ‘비인간’의 형상을 띤 괴물들이 등장하거나 환각적인 느낌을 주는 장면들 등을 주로 볼 수 있다. 실제 그것들은 궁금증과 혐오감을 반반 정도 갖게끔 한다. 과연 실제로 그 영화들은 어떨까.


    제17회 피판 기간 중 본 몇 편의 작품들은 부천판타스틱영화축제에서의 ‘판타스틱’이 지닌 의미, 그리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축제에 대한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인해볼 수 있게 했다.


    <더 머신>(2012): 인간의 최소 조건이란


    ▲ <더 머신>(The Machine, 카라독 제임스 감독) 스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1982)의 첫 장면은 레플리컨트(복제인간)를 대상으로 그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언어에 담긴 복잡 미묘한 문화적 이해의 부족과 한 군데로 고정되지 않는 시선은 그를 인간이 아닌 레플리컨트로 곧 규정하게 만들지만, 영화는 이후 오히려 더 인간적인 레플리컨트들로 화면을 채워나가며 도리어 레플리컨트의 인간다움이 아닌, 우리가 가진 인간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묻게끔 한다. 


    <더 머신>(The Machine, 카라독 제임스 감독)은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또 다른 변주처럼 느껴지는 영화로, 로봇 ‘아바’(케이티 롯츠)는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숀 영)를 닮아 있다. 반면 <더 머신>은 인간의 정서와 사랑에의 욕구를 가진, 이 로봇의 ‘인간적인’ 면모가 최종적으로는 어떤 특별한 기계 부속물의 일부로 환원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것임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반전의 결말과 함께 섞어 낸다. 곧 로봇 역시 충분히. 아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면 그 자체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매우 급진적인 결말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평등이란 부분은 늘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헤게모니가 그 기저의 중핵이므로, 어쩌면 이는 결국 인간과 로봇의 미래적인 이야기라기보다 현재 세계가 처한 인종·신분 차별 등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인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온건한 정의는 결국 그것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며, 우리는 여러 사회적·정치적 시스템 속 오해를 통해 이미 불평등하기에 그러한 것들과 맞서는 비판적·저항적 정의를 선취할 때 비로소 평등의 가치에 다가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 피어>(2012): '네 안의 두려움의 원인을 직시하라'


    ▲ <인 피어>(In Fear, 제레미 로버링 감독) 스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 피어>(In Fear, 제레미 로버링 감독)는 참 저예산 영화로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오며 거의 대부분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가는 단계인 두 남녀가 승용차에 타서 호텔을 찾는 지난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 와중에 계속 뱅뱅 돌며 ‘미로’에 갇힌 형국이 되고, 여자는 소소한 인기척 등을 감지하며 공포와 스릴이 배가되는 와중에 어느덧 저녁이 되는 사태를 맞는다.


    빨리 이 미로를 벗어나려던 참에 사람이 치이고, 신원을 알 수 없는 그 피해자가 차에 탑승한 뒤 상황은 급격히 최악을 향해 간다.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시종일관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나오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의 잔혹함 자체가 주는 공포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인 피어(in fear)’, 곧 내 안에 있는 두려움 자체로부터 공포가 출현하는 방식을 가져간다.


    곧 자동차 창문에서 바라보는 을씨년스러운 나무들과 하늘, 두 인물이 자동차에서 잠깐 내렸을 때 자동차로부터 이들을 향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주는 공포,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적의 존재에서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두 인물들의 두려움에 서서히 접근하는 방식은 꽤나 자극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안긴다. 


    이는 박해일 주연의 시종일관 기괴한 느낌으로 진행되었던 영화 <짐승의 끝>(2010)과 일견 비슷한 느낌을 안기는데, 뒤늦게 차에 탑승한 정체불명의 피해자가 이들을 비웃는 듯한 태도에서 돌연 가해자로 변모하고, 영화 초반의 술집에서의 사건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하며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갈 때, 이 미로에 갇힘이 최초의 사건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는 이 영화가 단순히 이유 없는 공포가 아닌 죄와 그에 대한 대가라는 심리적인 측면을 조명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꽤 개연성 있는 공포를 제공하는 셈이다.


    <관광객들>(2012), ‘엽기 살인 여행의 끝은’


    ▲ <관광객들>(Sightseers, 벤 웨틀리 감독) 스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광객들>(Sightseers, 벤 웨틀리 감독)는 바보처럼 보이는 두 연인의 여행을 따라가며 그들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준다. 그 끔찍함 대신 관객을 그 순진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두 인물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이는 엽기와 웃음을 오가는 특이한 감각들을 발생시킨다.


    여행이 ‘결코 계획한 것대로 진행되지 않는 가장 우발적인 삶의 조건들을 만드는 장치’라고 정의할 때 이들의 살인은 이 여행의 사건성을 극단적으로 더하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 살인은 이 순진무구한 두 사람이 현실의 여러 제약과 스트레스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들은 물론 그 끔찍함을 윤리적이지 않은 무엇으로 관객에게 전이시키거나 하는 차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곧 어떤 리얼리즘 드라마의 묘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와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독특한 전개 방식과 두 인물의 특이성으로, 영화는 ‘그림동화’(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집) 속 전형적인 우화들이 가진 잔혹성과 같이, 단순하고 선연한 모티브들의 중첩으로 이어지다 ‘앗’하는 대다수의 관객들의 반응과 함께 블랙-아웃됐다.


    이 영화는 피판 2013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의 심사위원장인 에릭 쿠 감독을 비롯하여 18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해, 작품상(상금 1,500만원)이 수여됐다. 


    ‘판타스틱함을 더하는 영화제 면면들’


    피판은 공식적인 폐막식 이후 이틀간 수상작 등 영화 상영이 평소 때처럼 이어진다. 28일 마지막 상영 시간인 저녁 8시에 ‘수상작 상영’으로 이 영화를 관람 후,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박수와 함께 피판의 공식 일정 9일에 이틀을 더한 11일이 최종 마무리됐다. 


    보통 영화관에서 영화가 블랙-아웃되자마자 관객들은 떠나기 시작하는 반면 영화 상영 전 피판의 홍보대사 후지이 미나와 이현우가 주문한 몇 가지 에티켓은 관객을 ‘피판인’으로 만드는 효과가 충분했던 것 같다. 대다수 영화에서 소수의 몇몇을 제하고 관객들 대부분은 엔딩 크레디트까지 진지한 자세를 유지한 이후 박수를 보냈다.


    또 특이한 광경이 피판 자원봉사자들이 가끔씩 영화 시작 전이나 후에 좀비로 변신해 시체놀이를 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영화관까지 축제의 판타스틱한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2012년 개봉한, 따끈따끈한 세 편의 해외 판타스틱한 영화들과 함께하며, ‘금기 없는’ 영화들의 판타스틱한 면모를 확인하며 다행이라 생각한다. 


    또한 막간의 ‘깨알 좀비 퍼포먼스’나 보라색 피판 자원활동가를 마주하며, 피판만의 에티켓 영상과 트레일러를 보며, 영화가 아닌 축제가 마음속에 새겨질 것 같다. 2014년에도 판타스틱한 영화축제를 기약하며.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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