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7.18 12:11

 2012 서울변방연극제 참가작 '모-래'가 지난 15일 일요일 7시 22분경 서울 고속터미널 소재의 ‘한강 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섬’과도 같은 세빛둥둥섬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이 독특한 공연의 전체 동선은 이렇다.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과 김정화가 투어 가이드를 하며 시작된 일종의 투어식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의 시작은 천막으로 자리를 옮겨 ‘모래’와 ‘한강’ 등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토크쇼로서의 중간 과정으로 변모했고, 마지막은 내성천에서 실어 온 모래를 바닥에 깔아 놓고 모래를 밟아 보는 체험식 퍼포먼스의 극적 순간으로 마무리됐다.

투어 가이드의 설명은 무언가를 떠날 때 어떤 하나의 지표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설렘과 이 투어 여행의 청사진이 살포시 들여다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한강 위에 띄운 세빛둥둥섬이 가진 휴양지 내지 대형 문화‧레저 단지로서의 이국적인 낭만의 모습에는 전시 행정과 졸속 행정의 은폐된 자본의 논리가 기실 자리하고 있다. 채 건설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막대한 예산 증액이 또 다시 그 후속의 완성에 있어 요구되는 가운데 사람이 살지 않는 흉흉한 인공물의 지역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 개의 섬이 떠 있다고 해서 ‘세’빛(+)‘둥둥’섬인 이 ‘환상’적 공간은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육지와의 연결이 없어 건너갈 수 없기 때문에 건축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섬은 실상 그 섬으로의 임시 가교를 육지로부터 고정시킨 밧줄을 통해 위태하게 이 섬을 붙잡아 둔 형국이었다.

이 세빛둥둥섬이라는 배가 없이는 갈 수 없는, 또 비가 와 잠긴 다리를 대신한 임시 가교도 비가 오면 쓸 수 없는, 그런 저 먼 곳의 어떤 스펙터클은 이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일종의 관광 상품과도 같은 이미지로 전유된다. 동시에 간간이 한 마디씩 던지는 투어 가이드의 말은 이에 대한 이 낭만적 이미지에 현실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시선을 가로지르게 만든다.

비가 조금씩 내렸고 관객들 대다수는 현장에서 나눠 준 우비를 입고 있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세빛둥둥섬을 구경하며 도착한 천막에서는 사회자 권은영(수유너머R 죠스)을 비롯하여 미술가 박은선, 배우 장인섭, 건축평론가 김일현, 인문학자 신승철 등 다섯 명의 사람들이 토크를 벌였다.

토크 전에는 '바리케이트 톨게이트'의 악쓰는 내레이션과도 같은 긴장감 있는 동시에 탈 형식의 구조를 이루는 노래들을 선보이는 공연이 이뤄졌다. 이들의 음악은 토크 중에도 배경음악이 아니라 토크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일종의 지루함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하며, 이 토크에 대한 나이브하고 감각적인 척도가 되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 토크에 참여 중인 배우 장인섭

처음에 이야기는 소위 산으로 가는 듯 보였다. 사회자는 각자 관심사 등을 너르게 배치시켰다. 일종의 분위기 이완 목적에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식의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고, 이내 강과 모래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갔다. 이 진지하지 않은 듯한 분위기는 이 토크쇼의 진행은 진지한 정치 연극의 모습을 갖추는 것에서 벗어나 앞선 투어 가이드들의 세빛둥둥섬에 대한 패러디적 묘사의 기조와 맞물려 적잖은 유쾌함의 리듬을 선사했다.

▲ 토크에 참여 중인 인문학자 신승철

70년대 한강은 모래 백사장으로 펼쳐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종의 서울의 해변가였다. 인문학자 신승철에게는 어느 날 한강을 보다가 바다를 못 보는 도시 속 삶에 대한 인식이 일상을 깨는 어떤 사건으로 다가온 경험이 있다.

또한 신승철은 물이 생긴 것은 별똥별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컵 하나 정도의 물이 생기는데 어마어마한 별똥별이 떨어져서 강을 이룬 것이고 그래서 강에서 우주적 비유를 떠올리는 한편, 자살예방센터에서 근무하던 당시 한강에서 자살하려고 앉아 있는 사람을 이끌어 내 우울증 치료를 받게 했던 사례들을 들어 한강에서 죽음의 이미지 역시 오버랩된다고 전했다.

한 설문에 따르면 한강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강’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상당수를 차지하는 대답은 ‘치맥’(치킨과 맥주를 한 데 이름)이었다고 한다.

▲ 토크에 참여 중인 사회자 권은영(수유너머R 죠스)

사회자는 놀이터에 점점 모래가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는 인공화된 조건에 익숙해지는 현대 도시인의 삶의 양식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박은선은 모래가 섞인 데는 안 가고 자갈과 콘크리트가 섞여 장식된 곳에서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려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4대강(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 사업은 사진 기록의 객관적 진단에 의거하건대 습지 생태계를 파괴하고, 강을 호수로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가령 낙동강은 낙동호로 바뀌었다. 댐들로 막아서 백사장에도 모래가 없다. 거꾸로 댐에 사용되는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 역시 모래가 사용된다. 이래저래 모래의 수난이다. 사실상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고, 이는 인류의 삶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로 작용한다.

▲ 토크에 참여 중인 건축평론가 김일현

이런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4대강 사업의 목적과는 달리, 원래 물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순환의 궤적을 지닌다. 물의 분자는 해양에서 대기로 다시 대륙을 거쳐 해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쓸 물이 부족할 따름이다.

이제는 물 부족 대신 모래 부족이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모래는 콘크리트가 되어 인간의 문명이 지속되는 동안 순환하지 않고 그 속에 갇혀 있는 꼴이다. 무분별한 현 정부의 발전의 논리 아래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모래가 있는 지역인 내성천의 모래 역시도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 토크에 참여 중인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

박은선은 모래가 물에 있으면 반짝거리는데 발로 모래를 밟으면 또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한데 그러한 체험을 하는 것도 내성천이 사라짐에 따라 마지막 우리 세대의 경험으로 사라진다는 점을 들어 이를 아이러니하고 또 슬픈 현실이라고 전했다.

마치 이 토크는 현실(사실)과 이야기(허구적 사실)의 경계를 오갔는데, 이 이야기의 진실성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어떤 하나의 연극과도 같았다. 곧 이 빛과 앞에서의 스크린 하나의 중심과 빛이 무대를 방송이 재매개하여 표현하는 것 같은, 마치 하나의 쇼와 같은 감각적 측면이 이 투어의 정취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크 이후 관람한 흑백 영상은 해수욕장에서 주의사항에서 모래가 나오고 경제개발계획에서 카랑카랑한 성우의 칠십년 대 특유한 리듬의 내레이션 아래 개발 기조를 홍보하며 교육하며 도약과 희망, 근대적 인간의 상을 정초하며 그 발전의 계획을 국민들에게 내재화시키는 장치가 됐음을 인식케 한다.

영상에서는 ‘모래의 계보학’이 정치‧역사를 분절하고 또 잇는다. 모래는 이제 없어지는 과정을 실천하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이러한 풍요로운 한강 백사장의 모래가 ‘한강의 기적’ 발전의 서사를 쓰는 가운데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 부재의 이름 자체로 자연과 공존하는 생명의 노스탤지어로 다시 기입된다. 이내 그 모래는 ‘깔끔함’이 우선시되는 도시 문명에 익숙해지는 현대 도시인에 의해 문명화되지 않은 껄끄러운 존재가 되고 마는 듯 보인다.

모래는 하나의 입자로서 보통 부피를 이뤄 존재하는 물질일 뿐이지만, 영상은 경제 개발의 풍요로움을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 위 사람들의 여유로 상징해 내고, 사실상 그 모래가 사라지는 과정 자체가 경제 개발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을 은폐한다. 이제 이 속에서 퍼포먼스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모래는 그리운 무언가가 된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뒤덮인 바닥을 밟고 서는 대다수 현대인에게 모래는 잊힌 존재에 더 가깝다.

이 모래는 거대한 스케일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가운데 드디어 개봉박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 대의 대형 점보트럭이 등장하고 천막 앞에 멈추더니 모래를 쏟아냈다.

너무나도 고운 입자들이 부피를 이룬 모래 덩어리, 그리고 그 뒤에 조명이 가해진 세빛둥둥섬을 뒤에 두고, 이제 고립된 독자적 생명체로 ‘미약한 위용’을 드러낸다. 덩어리를 형성하기보다 분자적 표면으로 집합하여 고른 판을 유지하는 모래는, 용기에 따라 그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가운데 흙보다는 물과 오히려 더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마치 손바닥을 스치며 한없이 빠져 나가는 모래의 미약하고 동시에 미묘한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모래는 발전의 논리에 쉽게 자신의 이전 터전을 지워야만 했던 것일까. 모래는 또 그 무한한 수의 집합으로 인해 우주와 세계를 상징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긴 시간의 끝없음을 상정한다. 가령 모래시계는 유한하기보다 무한한 반복의 기호로 작용하지 않는가.

퍼포먼스는 오히려 모래보다 땅의 도상에 더 부합하는 것 같았다. 모래는 단단하게 뿌리를 박는 하나의 단단한 터전과도 같이 작용했다. 웃통을 벗은 퍼포머가 나타나 이 모래를 밟고 또 그 모래를 온 몸으로 파고드는 등의 사력을 다하는 몸짓으로 이 모래 위를 움직였다.
하지만 모래는 이중의 얼굴을 가졌다. 물이 더해진 축축한 모래를 직접 만졌을 때 어느 정도 끈기가 있는 작은 덩어리들을 형성하고 있었다. 모래는 햇빛을 받아 고운 입자가 되고, 다시 물을 만나 부피를 확장해 흙과 같이 된다.

절망적인 상황의 인식이 스쳐 가는 가운데, 우리 세대는 앞으로의 세대에게 강과 모래를 과연 전해줄 수 있을까. ‘모-래’는 이 절망적 인식을 추동했고, 비극적 결말은 그 자체의 완결이 아닌, 현실 비판의 과제로 다시 시선을 돌리게 했다. 결국 콘크리트 인공 땅 위에 펼쳐 놓은 모래 백사장의 시뮬레이션 체험은 내성천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세대로서 우리 자신이 아닌 오히려 우리 이후의 세대의 경험을 우화처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았다.

리슨투더시티는 ‘청계천 녹조 투어’, ‘디자인 액티비즘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정권의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디자인 정책 등에 대해, 대중의 참여와 함께 직접적인 행동주의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해 왔다. 이 강한 행동주의(액티비즘activism)가 성립하려면 잘못된 정부 정책과 방침들이 더 많이 선행돼야 한다는 역설이 있지만, 이 그룹의 평소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그 활동들에 참여하며 부당한 현실에 대한 개안(開眼)과 그 현실의 개선을 동시에 이뤄 나갈 수 있기를 바라 본다. ‣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http://listentothecity.org/

리슨투더시티와 공동 연출을 한 '진동젤리'에 대한 소개 : 사람과 사람,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현대인의 도시적 삶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작업들을 시도하고 있다. 동네 주차장을 돌아다니며 시도 읽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텅 빈 주차장을 채우려 노력하는 한편, 요즘은 도시 구석구석에 틀어박혀있는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에서)

[공연 개요]
변방연극제 초청작 ‘모-래’
Seoul Marginal Theatre Festival 2012
Listen to the City & VIB JELLY - To the Sand
제목 : 모-래  To the sand 
일시 : 7월 15일 일요일 7시 22분 (80분 공연)
장소 : 세빛둥둥섬 앞 공터 (지하철 고속터미널 8-1 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http://www.floatingisland.com/company/map.asp
연출 : 리슨투더시티(박은선) + 진동젤리(고헌, 김종우)
영상 : 리슨투더시티(우에타 지로, 김준호) 
출연 : 권은영, 김일현, 김정화, 류세오 류, 박은선, 신승철, 장인섭
리슨투더시티 www.listentothecity.org    
내성천 모래강 www.naeseong.org
변방연극제 Seoul Marginal Theatre Festival http://www.mtfestival.com/
연극문의: @listentothecity 010 4297 8652, 010 9972 3805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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