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준 2012.07.04 14:51

오는 4일부터 20일까지 올해 14회째를 맞는 변방연극제가 "연극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 주제로 열린다.
2012 서울변방연극제는 지난 변방연극제의 그것과 다른 2012년 선언문manifesto을 새롭게 내걸었다. 곧 일종의 마니페스토에서 서울변방연극제의 정의는 ‘동시대의 연극성을 새롭게 조망하고 질문하는’‧‘연극과 연극, 연극과 삶과의 경계에서 균열과 아름다움을 사유하는’‧‘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모색하는’‧‘이상한 것, 낯선 것, 잡것들의 미학을 추앙하는’‧‘연극이 아닌 모든 것들의 연극제’ 이상 5개의 특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를 어떤 식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선 동시대 곧 컨템퍼러리contemporary의 연극성은 하나의 틀로 정위되지 않는 커다란 하나의 흐름 안에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는 미학적‧윤리적‧감각적 지점을 찾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현재 유효하게 작동하는 또는 팔딱이는 지점이 이 연극성을 교차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두 번째 연극과 삶과의 경계는 삶을 재현하는 내지는 거리를 두며 삶을 성찰하게 하는 비판 정신으로서 거울의 기능을 수행하는 연극 고유의 정신과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연극과 연극의 경계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이는 변방연극제 안에서 프로그램 기획자 및 디렉터의 연극들의 전략적 배치와 시선이 발생시키는 차이들의 총합을 관객들이 재배치의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세 번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정확히 하이데거의 죽음에 대한 정의 내림에 상응한다. 하이데거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죽음이라는 삶의 멈춤, 곧 삶의 불가능성을 통해 삶의 가능성을 역으로 추출해 낼 수 있는, 곧 죽음이라는 아포리아를 실존적으로 극복하는 철학적 개념을 제시한다.

블랑쇼는 이를 반대로 사유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죽음을 끊임없이 목격하지만 이는 그러한 가능함의 사건들이고, 여기서 불가능성으로서 죽음을 사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랑쇼는 가능성의 불가능성 이 가능성에서 진정한 자신의 죽음을 사유하는 데로 나아가고자 한다. 동시에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최근 동유럽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를 모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과 상등한다.

불가능성은 곧 아포리아다. 곧 이를 단절된 경계 막 대신 틈입 가능한 균열로 보는 순간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은 열릴 것이다.

네 번째 ‘이상한 것, 낯선 것, 잡것들의 미학을 추앙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균열의 서사를, 곧 불가능한 것과 마주침 이후 그것을 교란시키고 내파시킬 하나의 방법론적 제재이다. ‘추앙’이라는 말까지 더해진 것을 보면 신화적 의식의 경계가 작동하는 듯도 하다. 이 이상한 것이란 이를테면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바타유의 이질성의 개념과 공명한다. 동시에 불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연극이 아닌 모든 것들’이란 분명 (연극이 아닌 연극이라는) 이상한 연극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네 번째 정의의 확장이자, 다시 이 앞의 네 개의 정의를 모두 포함하면서 또한 배제한다. 바로 연극이 아닌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는 변방연극제가 탈장르적 시도를 꾸준히 해 온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을 듯도 하다. 또한 두 번째 정의에서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예술의 특성을 적극 품고자 하는 의도로도 비춰진다.

변방연극제의 지난 중심 테제는 중심과 주변 간의 전복‧교란‧전도에 대한 개념들을 품고 있었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자 중심과 주변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 다시 새겨 넣는 작업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는 전복 대신 그 둘의 이분법적 분리와 차이를 암묵적으로 벌리고 있었다고도 보인다. 변방연극제란 이미 그 이름부터 주변이라는 부정의 함의를 긍정으로 전도하려는 함의를 배태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이질적인 것은 시스템을 탈주하는 탈코드적인 측면의 초입에 선다. 이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상학 계열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시선의 재배치의 측면에 마주선다. 곧 한 마디로 이번 변방연극제는 기존의 주변으로서 ‘변방’을 새로운 차원의 감각들의 서사가 적용되는 ‘이질적인 것’으로서 변방으로 새롭게 개념을 다시 쓰는 내지는 리모델링하는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선언문에 이어 이번 연극제의 주제는 “연극 없는 연극, 정치 없는 정치”다. 연극의 정치성의 회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명제는 연극이 사회적 목소리, 첨예한 이념의 쟁취하려는 의식을 잃어 버렸다는 문제를 가리킨다.
이미 촛불 집회가 만든 광장에서의 집단적 목소리와 참여-정치는 예술이 가야 할 동시에 가져야 할 가치들을 충분히 인지하게 만들었다 하겠다.

변방연극제의 작품들은 장소 특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광화문 광장, 성북동, 문래예술공장, 한강, 닻올림, 인천아트플랫폼, LIG아트홀, 한국공연예술센터 앞마당, 노들장애인야학교실 등 그 장소도 여느 축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다양한 공간을 지향한다. 게다가 극장을 통으로 빌려 쓰는 대다수 연극 계열의 축제와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다. 대다수 작품들은 예약을 통한 무료로 열리거나 티켓 가격이 현재 공연계와 비교해 매우 특별한 가격이다.

연극, 정치가 되다

오월 마당굿 <일어서는 사람들>은 1988년 초연되고 1997년 개작하여 현재까지 공연 중인 놀이패 신명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데, 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피와 눈물로 이룬 투쟁의 공동체, 희망과 평화의 공동체를 마당굿으로 형상화하며 현대 사회의 질곡과 과제를 조망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미 많이 재현되었고 또 그 가치의 합목적성을 제한다면 이 작품이 갖는 연극제 안에서의 동시대성은 시대적 과제를 안고 씨름하며 직접적인 정치를 표방하는 연극의 재현성이 추동하는 감각의 자리를 그것이 현재도 유효한지를 곧 메타적으로 진단한다 하겠다.

이춘성의 <늙은 코미디언의 창고>는 웃음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유쾌한 희극 전문 배우 이춘성이 젊은 시절 동명이인의 정치범으로 오인돼 고문을 받게 되면서 그의 삶은 희극에서 비극으로 전환되는, 현대 정치사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리슨투더시티와 진동젤 리가 함께 하는 <모-래>는 모래를 잃어버린 강인 한강에서 거대한 트럭에 실려 오는 모래를 보면서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광경을 담고 있다. 작품이 직접적으로 현실 정치의 현안을 떠올리게 하는 문제는 일종의 생생한 현실 앞에서 담론 연극적인 생산을 포착해 내는 가운데 비판적인 사유로 나아간다.

샐러드의 ‘존경받지 못한 죽음 시리즈’는 한국인 파독광부, 여수외국인보호소의 외국인이주노동자,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으로 사망한 한 이주여성의 이야기들로 이주와 죽음의 문제를 재조명한다.

연극, 질문을 던지다

<너의 현대 나의 현대>는 현대 무용가 조희경이 '현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의 아시아 무용가들을 만나 그 질문을 나누며 대답의 열쇠를 찾아가는 춤의 무대 아닌 다큐멘터리 댄스 필름이다. 조희경은 이 작품으로 제11회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에서 대안 영화상을 수상했고, 2008‧2009‧2011년 세계적인 안무가인 안나 핼프린(anna Halprin)과 작업했고, 2011년 홍은 예술 창작 센터 무용 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현정의 <인터뷰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국가 프로젝트’와 자이니치 2세 및 3세와 작가가 대화하는 과정을 담은 ‘자이니치 프로젝트’로 이뤄져 있다.

연극, 삶의 공간을 탐구하다.

제니 새비지와 제임스 타이슨의 <a circle>은 관객들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건축공학적인 각종 사물들이 21세기 산업에서 기계들이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속에 틈새를 포착해 도시의 표층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존재를 포착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현재의 주거형태와 소유 개념의 집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사카구치 교헤의 문제의식은 <움직이는 집(A Mobile House)>에서 사람의 움직임‧노동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집의 개념을 제시함으로 이어진다.

극단 서울괴담의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은 성곽(북정동) 쪽의 재개발지역의 성북동 지역을 노선투어로 잡고, 사라질 장소, 과거로 회상될 장소를 통해 시간을 엮는 환타지로 선보인다

차지량의 <뉴홈>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는 과정으로 성장하는 세대의 뉴홈(둥지)을 모색하는 작품으로, 극장에서 영상을 본 후 버스를 타고 빈 땅으로 함께 이동하여 공연 후 취침 및 휴식 퍼포먼스를 하며, 아티스트와 관객이 연대하며 일시적 주거 형태로서 집을 만드는 집단적 퍼포먼스 형태를 이룬다.

연극 삶과의 경계에 맞닿다

전소정의 <Three ways to Elis>는 한 사람을 기억하는 세 사람의 진술을 통해 사적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간극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50년간 숲 속에 마을을 짓고 살았다는 무용수 Elis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작가가 직접 체험한 숲, 그들이 꿈꾸는 숲 속의 무용수에 대한 바람 등이 섞이며 기억의 방식을 추적하고, 판타지와 실재의 경계를 시험한다.

한편 <이야기-드라마 혹은 미스터리>에서 조희경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삶의 불연속점들을 무대에서 연속성의 계열로 바꿔 가는, 곧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확장하는 시간을 무용 작품으로 선보인다.

장애인극단판과 일본 안무가이자 연출가 류세이오 류가 함께 하는 <공상의 뇌>는 공백, 침묵, 인간과 동물의 결합, 뇌와 두뇌 중심의 활동 등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장애인 극단에 부여되는 편견에 맞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표현방법을 찾는 여행의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류한길‧최준용‧홍철기의 <열등한 소리들>은 소리를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나누는 보편의 시선들에서 소리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곧 열등하다고 불리는 소리들을 통해 소리를 소리 그 자체로 듣게 함은 이미 소리를 가치적으로 정위 짓는 듣기의 편견을 교정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LIG 문화재단과 서울변방연극제가 공동주최하는 지은인 작가의 [샴 아미그달라 Siamese Amygdala]는 현실에 대한 SF적 상상들을 극대화하여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나누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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