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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리뷰 : '어둠 속 빛을 찾아서'REVIEW/Theater 2011. 12. 26. 12:11
처음 배우들의 등장은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보이지 않는 자들의 세계, 시선 너머에 시선이 있다는 것, 보지 않는 시선이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 그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영원히 맞닿을 수 없다는 것.이들의 왕국은 평온과 안락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부딪치지 않는다는(부딪치지 않도록 장애물을 최소화한도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유래)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가리는 중요한 장치裝置가 된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한 비밀로 공유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실상 삶을 사는 데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 갈등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여기에서 기인하며,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무화시키게 된다.
단순히 장님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와 분별을 통한 구분 짓기와 감동을 이끌어 내는 대신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마치 빛과 어둠의 테마의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
곧 이들의 모습은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 마야의 베일에 감싸인 채 실재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확장될 수 있음은, 지팡이를 든 이그나시오의 등장과 그가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서이다.
이그나시오가 든 지팡이는 현실을 올바르게 보듯이 감각하고, 온전하게 세상에 설 수 있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다른 이들이 장애물을 모두 없애고 실재를 감각하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할 수 없게 하는, 동시에 보는 것을 시도하지 않게 한다. 곧 이들의 첫 등장의 낯선 모습은 이들이 실은 환상에 있는 것, 꿈을 꾸고 있었음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이그나시오는 어둠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어둠과 같은 삶에서 보이게 되는 것과 동시에 삶에 빛 곧 구원이 찾아올 것이라는 단 하나의 꿈을 꾼다. 이는 꿈이나 환상에 젖어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
곧 다른 이들의 눈이 먼 것은 세계를 실재를 보지 않는 것으로, 또한 빛을 찾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수동적인 삶의 결과물에 젖게 한다면, 이그나시오에게 눈멂이란 오히려 세계를, 현실을, 실재를 직시하게 하는 냉철한 이성과 빛을 기다리는, 곧 희망을 진정 애타게 찾는 능동적인 결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둠의 동굴 속에서 빛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빛 곧 출구의 존재를 감각하려고 하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부터 이그나시오는 이들을 벗어나게끔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동굴의 어둠 곧 무지에서 오는 혜안의 빛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포함하는 무의지적인 기억의 빛이 있다는 것에서 그 구원의 빛은 단지 그 구원이 아직 오지 않을 성격만을 띤 것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곧 구원을 기다리는 이그나시오, 빛을 기다리던 이그나시오는 부정의 현실 인식과 감각에 젖어 있는 채 평화로운 이 학교의 세계의 질서를 흐트러뜨려 놓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눈을 안고 오히려 정말 인간이 찾아야 할 가져야 할 그 무언가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
이그나시오는 한 순간의 믿기 힘든 죽음을 맞고 말지만, 그가 든 지팡이와 굳은 의지, 단단한 삶에의 인식은 이 보이지 않는 삶의 심연과 같은 어둠에서 진정한 하나의 빛이 되고 있음을 생각하는 건 그의 죽음이 가진 작품의 비극성 그리고 허무한 결말을 넘어 다시 어둠에 휩싸인 극 속의 세계 그리고 어둠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 관객의 온전한 몫을 수여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배우들의 신체적이고 실제적인 어떤 모방과 재현의 연기는 이 어둠과 환상의 접착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이그나시오(배우 최영열)는 어둠에서 빛을 끄집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 개요]
공 연 명 |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원 작 |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원작 번역 | 김보영
각 색 | 유수미 공동 각색
연 출 | 유수미
제 작 | 물속에서 책읽기
출 연 | 양승한, 이혜연, 윤길, 구시연, 이승구, 최영열, 한혜진, 권미나, 권승록, 주보라
스 텝 | 드라마투르기 조경아/ 조연출 정상미/ 영상 김선미, ㈜두리미디어 김민 / 기획 김연정
주 최 | 극단 서울공장
주 관 | 물속에서 책읽기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연극협회, 주한스페인대사관
협 찬 | 선한목자병원, 더블컵커피, 라라베시화장품
공연자문 | 어둠속의 대화, 엔비전스
공연일시 | 2011년 12월 15일(목) ~12월 25일(일)
평일 8시 / 토요일 4시, 7시 / 일요일 3시, 6시 / 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장소 | 설치극장 정미소
관람등급 | 만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0분
[사진 제공=극단 서울공장]
김민관 기자 mikw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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